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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걷다> 시리즈
    • 전주동헌
    • 완판본
    • 선비의길
    • 3인의 서예가
    • 전주비빔밥
    • 전주향교
    • 풍류
    • 향수를 안고 걷는 마을
    • 동학농민혁명이야기
    • 일제 강점기 전주의 아픈 기억을 더듬다
    • 감영을 품은 전주한옥마을
    • 한국의 맛, 전주의 맛
    • 유일본 전주사고 조선왕조실록과 어진을 지킨 전주 전북인
  • 고전 번역서 및 기타

연수원일정


선비의 길

목차

여는글 - 일제에 항거하는 뜻을 실어 연을 날리다

책을 펴내며 - 조선 선비들의 결기가 서려 있는 곳

    1. 의(義)를 지키는 길
  • 의는 곧 누구를 위해 죽는다는 뜻
  • 옥류동 최학자, 금재의 치열한 생애
    2. 선비가 꿈꾸었던 나라
  • 국화는 선비를 상징하는 꽃
  • 조선이 꿈꾸었던 나라
  • 조선 500년 성리학의 마지막 거목
    3. 선비들이 은행나무를 심은 뜻
  • 은행나무의 영원성과 유일성을 본받아
  • 고재의 시가 조금 남아 있는 이유
    4. 시대를 아파했던 지식인의 삶
  • 역사적 격변기를 살았던 고고한 유학자, 유재
  • 시대를 아파하는 어려운 시대의 지식인
  • 닫는 글 선비길이 품고 있는 기억을 함께 나누며

책소개

전주에 대한 아주 특별한 기억 중에 한옥마을에 살았던 선비들이 있다. 한옥마을은 선비들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학자촌 또는 선비촌이라고 불리던 곳으로 전주향교 주변과 오목대 아래의 마을을 말한다. 이곳에 선비들이 마을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1920~30년 무렵으로, 일제에 의해 조선의 문화가 뿌리 뽑히고 조선어 사용마저 금지당하던 때이다. 전라도 일대의 선비들이 전주향교 주변으로 이사와 살면서 강학을 하고 서당을 열었고, 마을은 이내 후학을 길러내는 학교이자 정치 토론의 장이 되었다. 일제 침략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처럼 한옥마을은 전국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특별한 역사와 이야기를 지닌 공간이다. 이 마을은 서울의 양반과 관료들이 직간접적으로 일제 침략에 도움을 주고 벼슬과 관직을 나누어 가질 때, 정치에 비껴서 있던 전라도의 선비들이 만든 마을이다. 조선의 것, 조선의 정신이 시대의 격랑에 휩쓸릴 때, 그것들을 지키어 후세에 전해주려 했던 조선 선비들의 결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조선의 것을 불의(不義)로부터 온전히 지키어 더 많은 사람과 나누려는 마음, 그 마음이 만들어낸 마을이다.
그 마음의 중심에는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간재 전우의 제자들이 있다. 삼재로 불리는 금재 최병심과 고재 이병은 그리고 유재 송기면이다. 비록 나라를 일제에 빼앗겼어도 새 날은 오고야 만다는 희망을 품었던 스승 간재의 뜻에 따라 은둔강학하며, 새 날을 준비하는 씨앗을 뿌린 선비들이었다. 자신이 처한 시대 상황에 등을 돌리지 않으면서도 어떠한 경우에도 새 날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이들이다.
전주 사람들의 오래된 기억 중 하나로 전주천변을 수놓았던 형형색색의 연(鳶)을 꼽을 수 있다. 전주의 연날리기는 겨울 한 철의 놀이가 아니었다. 여름날, 전주천의 하늘 위를 수놓았던 연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우시장이 열리지 않는 날 매곡교에서 날리던 연은 여름철 놀이라는 것뿐 아니라 연에다 낙서나 글을 써 넣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었다. 전주향교 주변에 선비촌이 만들어질 무렵, 사람들은 일제에 항거하는 글을 쓴 연을 더 높이 날리고 어김없이 연걸기를 하여 연줄을 끊곤 하였다. 일제에 항거하는 글을 더 멀리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1900년대 일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선비들의 저항이 만나는 곳이 바로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이 특별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또한 전주의 선비문화가 지니는 특성이기도 하다.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선비들이 집단 지성을 발휘하였던 곳, 이곳에서 멀리서 찾아오는 벗과 나누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한다.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 제1장 학이(學而)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벗과 나누는 반가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원(遠)은 벗과 떨어져 있는 공간적 거리와 함께 시간의 길이 또한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 곳에서 찾아노는 벗은 아득한 과거에서 찾아온 벗일 수도 있고, 미래에서 찾아오는 벗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시대가 아무리 어지러워도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를 지지하고 일깨우는 우정을 확인할 수 있다. 세월을 뛰어넘어 서로 사귀는 벗이 전하는 즐거움!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 한옥마을이다.
여기, 이곳에서
사나운 시대를 견디며 어지러운 세월을 살면서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내려놓지 않았던 조선 선비들과 맘껏 우정을 확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